
신덕왕후 강씨는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아내이자, 조선 최초의 왕비입니다.
작호(작위나 칭호)는 현비, 시호(죽은 뒤 붙여진 이름)는 순원현경신덕왕후입니다.
그녀는 태조 이성계의 정치적 조언자이기도 했으며, 1899년 대한제국 고종에 의해 신덕고황후로 추존(죽은 뒤 지위를 높임)되었습니다.
출생과 가계(가족 배경)
신덕왕후는 상산부원군 강윤성과 진산부부인 강씨의 딸로, 본관(성씨의 근원)은 곡산입니다.
그녀는 조상은 고려 태조 왕건의 외가쪽 선조이며, 고려 충혜왕 때 권문세가(권력이 센 귀족)의 규수(귀족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 강서는 상산부원군에 봉해지며 곡산 강씨의 시조가 되었고, 친정아버지 강윤성은 고위 관직을 지내낸 후 사후에도 계속 작위가 높아졌으며, 강씨의 숙부(아버지의 형제)는 태조 이성계의 큰아버지 이자흥의 사위였습니다.
이성계와의 만남
이성계가 강씨와 처음 만난 일화는 매우 유명합니다.
어느 날 호랑이 사냥을 하던 이성계가 목이 말라 우물을 찾았는데, 마침 그 우물가에 강씨가 있었습니다.
이성계가 강씨에게 물을 청하니, 강씨는 물 위에 버들잎을 띄워 주었습니다.
이에 이성계가 나무라자 강씨는 냉수를 급히 마시면 탈이 날 것 같아 버들잎을 불며 천천히 마시라고 한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성계는 강씨의 지혜와 미모에 감탄하였고, 그 우물가의 여인이 강씨였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조선 건국 공로(공적)
강씨는 이성계가 말을 타다가 크게 다친 사건을 계기로 정몽주가 이성계를 제거하려 했을 때 이방원을 급히 해주로 보내 이성계를 개경으로 불러내어 화를 막았으며,
이방원이 자객(암살자)을 보내 정몽주를 죽였을 때 대신을 죽였다며 분노하던 이성계를 달래어 부자간의 갈등을 풀어 주었습니다.
강씨는 이처럼 수완(능력)과 결단력을 갖춘 인물이었으며, 이후 조선의 첫 왕비가 되어 현비에 봉해졌습니다.
책비(왕비로 임명)와 책봉(왕세자로 임명)
혼인 할 당시 강씨는 이성계보다 20살가량 어렸으며, 이성계는 첫 부인 신의왕후 한씨와의 사이에 장성한 자녀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강씨는 신의왕후 한씨 소생(낳은 자녀)의 장성한 왕자들을 제치고 자신의 아들 의안대군을 왕세자로 만들려 했습니다.
그러나 장남이 아닌 후처 소생의 차남이 왕세자가 된다는 것은 신의왕후의 아들딸들에게 큰 반발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이성계는 왕세자로 신덕왕후의 아들 방석을 지명하였고, 이로 인해 신의왕후 소생의 다섯째 아들 방원은 격분하게 되었습니다.
왕자의난과 사후의 수모
1396년 9월 15일 신덕왕후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태조는 몹시 애통해하며 그녀의 명복을 빌기 위해 능(무덤) 옆에 암자(작은 절)를 지어 매일 아침과 저녁마다 향차(향을 피우는 의식)를 바쳤습니다.
흥천사가 완공 된 이후에는신덕왕후의 능에 재(제사)를 올리는 절의 종소리를 들어야만 침소(침실)에 들었고, 신덕왕후의 명복을 비는 불경(경전) 소리를 듣고 나서야 수라(식사)를 들 정도로 정성을 보였습니다.
신덕왕후가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고, 의안대군을 포함한 신덕왕후의 아들들은 모두 제거되었으며, 사위도 살해당하고 딸인 경순공주는 여승(여자 승려)이 되었습니다.
신덕왕후의 세자 책봉 사건은 적서차별과 연관 된 제도들이 생겨 난 계기를 만들었으며, 태종 이방원은 왕이 된 후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격하시키고 정릉을 도성 밖으로 이장(무덤을 옮김)하였습니다.
또한 정릉의 봉분(무덤)을 완전히 깎아 무덤의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하였고, 정자각(무덤 앞의 건물)은 헐어버려 그 석물(돌로 만든 것)을 광통교를 보수하는 데 사용하게 하였습니다.
종묘의 제례(제사)에서도 신덕왕후에게 올리는 제례는 왕비로서가 아닌 후궁의 예로 올려졌습니다.
복위(지위를 되돌림)와 유산
이후 신덕왕후의 복위 문제는 논의가 계속되었고, 1669년(현종 10년) 송시열의 상소(글을 올림)를 현종이 받아들여 신덕왕후는 복위되고 종묘에 모셔졌습니다.
또한 정릉은 다시 왕릉으로서의 위신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신덕왕후는 조선의 첫 왕비로서 조선 건국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정치적 결단력과 대담성을 보여준 인물이지만,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자식들이 비극적인 결말은 맞은 것이 아쉽습니다.